어서 답사장소를 정하기까지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조별 회의를 하던 중 백석이 사용한 평북 정주지방 방언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고 정주방언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책상에 앉아 방언에 대해 조사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기에 정주지방 방언을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보기로 했다. 우리는 곧
현대시의 기틀을 마련했다. 본고에서는 김영랑․백석․정지용․윤동주․이육사를 중심으로 그들이 전개한 시 세계를 통하여 1930년대 시에 대해 알아봄과 동시에 문학사적 의의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Ⅱ. 한국어의 훈련과 그 의미
식민지 후기의 한국 시는 일제의 악랄한 검열 제
담는 그릇에 따라 모양이 바뀌듯이 우리는 이제 세 작가의 작품을 통해 그들이 살아냈던 그 시기를 각자만의 문학적 색깔로 어떻게 담아냈는가를 알아보고자 한다 - 현대 이전에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조국을 빼앗기고 울분과 설움으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던 당대 지식인들의 고뇌를…
착수하여 그 후반에 일반 독자에게 정리된 전집이 소개되었다. 그가 사상적 신조로 인해 월북했든 순수한 귀향의 의미였든 그것은 논외의 대상이다. 다만 백석이 분단문학사를 극해야하는 우리 문학사에서 재고의 여지가 있는 시인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것이 연구자가 백석에게 주목하는 이유이다.
Ⅵ. 부록
*정지용
1)생애
정지용은 1905년 음력 5월 15일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면 하계리에서 아버지 정태국과 어머니 정미하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친 정태국은 한약에 대한 지식을 익혀 고향에서 한약상을 경영하여 처음에는 비교적 넉넉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이 때 그 부친이 소실을 두어
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1930년대 중반에서 1940년대 전반에 이르는 민족적 암흑기에 이처럼 우리의 문학 활동도 일제의 심한 탄압과 간섭을 받았지만, 조선어 신문과 잡지가 폐간되기 전까지 창작 활동은 이전 어느 때보다 활발한 양상을 보였다. 이 시기에 작품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것은 비
9. 비평과 역사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
우선 역사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면 역사는 사물의 처음을 알고자 하는 것으로서 존재의 근원을 탐구하는 것이다. 사물의 처음, 근원을 따지는 활동을 통해서 그 다음 시간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까닭은 과거를 제대로 알게
현대시로서의 면모를 갖추는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 또한 이 시기에는 각종 잡지의 등장을 통한 발표지면의 확대와 더불어 우리시사 속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는 여러 시집들도 간행된다. 그리고 백석과 더불어 30년대 후반기에 등장한 서정주·유치환·오장환·이용악·신석정·김현승 등의 개성적
백석이 태어난 평안북도 정주는 이광수 김소월 등 한국문단의 대가들이 태어난 곳으로,남강 이승훈 등에 의해 민족주의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던 지역이었다. 백석은 남강이 설립한 오산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에 유학하여 서구문화를 접하고 국내에 돌아와 신문사와 잡지사 등에 근무하게 된다. 그러